조광조 趙光祖
1482(성종 13) ~ 1519(중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한성출생.
개국공신 온(溫)의 5대손으로, 감찰 원강(元綱)의 아들이다.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오사화로 화를 입고 회천에 유배 중이던 김굉필(金
사상의 성립
* 단군신화의 의의 : 홍익인간의 건국이념,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의 정신적 지주
③ 고조선의 사회
* 8조법금 : 반고의 「한서지리지」에 3개 조항만 전함
* 8조법금에 나타난 사상 : 개인의 생명존중, 사유재산의 인정, 노예제가 존재하는 계급 사회
④ 고조선의 흥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다. 반면 온건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왕조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은 신진사대부들은 재야로 물러나 훗날 사림(士林)의 모태가 되었다.
관학파는 사장(詞章)을 중시하고 <주례(周禮)>를 국가통치이념으로 내세워 새 왕조의 문물제도 정비와 근세문화 창조에 기여했다. 반
사림을 다시 등용하였다. 조광조는 이러한 정치 상황 속에서 사림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중종 초기의 개혁 정치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였다.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 사류들은 개혁의 대상으로 훈구 세력의 정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고자 하였고 유교적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비교>
3. 정치사상
정치관은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 구체적 실현방법으로 왕이나 관직에 있는 자들이 몸소 도학을 실천궁행(實踐躬行) 해야 한다고 주장, 이것을 지치주의(至治主義), 도학정치라고 함.
4. 개혁정치
(1) 소격서 혁파 - ‘도교는 세상